본문 바로가기
메뉴
쇼핑백

향 · 2025

Pluviophile · 비가 후각의 형태가 될 때

게시일
언어
한국어
읽는 시간
5분
이 글을 원문으로 읽기: 원문 읽기

이 글은 2025년 6월 5일에 베트남어로 게시된 원문을 옮긴 번역입니다.

이끼 덮인 초록 돌 위의 R Parfums Pluviophile 병. 옅은 안개 속, 김 서린 유리와 초록 잎 너머로 보인다.

비가 ‘날씨’에 머물지 않고 느끼는 방식이 될 때 · Pluviophile과 함께

어떤 비는 사람을 서둘러 비 피할 곳을 찾게 한다. 그러나 어떤 비는 걸음을 멈추게 한다. 고요히 머물며 주변과 자신을 더 깊이 느끼게 한다. 그런 순간의 비는 더 이상 날씨가 아니다. 마음의 상태가 되고, 나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공간이 된다. Pluviophile은 바로 그 고요에서 태어났다. 비를 이미지나 소리가 아닌 향으로 되살린다. 기억의 후각적 형태처럼.

Pluviophile이라는 이름

“Pluviophile”은 라틴어 pluvia(비)와 -phile(좋아하는 사람)에서 온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비를 사랑하는 사람은 낭만이나 시정(詩情) 때문이 아니라, 비가 데려오는 고요와 감정의 깊이 때문에 비를 사랑한다. 이들에게 비는 요란하지 않다. 마음속의 쉼표이고, 모든 감각이 열리는 때이며, 잊었다고 여긴 것들이 되살아나는 시간이다. 뇌우가 지나간 뒤의 흙냄새, 창틈으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 아직 물기가 배어 있는 낡은 스웨터처럼.

신주쿠, 비 오는 오후와 Pluviophile의 시작

도쿄 신주쿠역 승강장의 역명판과 초록 띠를 두른 채 멈춰 선 열차. Pluviophile의 영감이 시작된 곳.
도쿄 신주쿠역 승강장의 역명판과 초록 띠를 두른 채 멈춰 선 열차. Pluviophile의 영감이 시작된 곳.

Pluviophile의 영감은 향의 초안이나 실험실에서 오지 않았다. R Parfums의 조향사 Rei Nguyen이 매주 들르던 도쿄 신주쿠, 그곳의 아주 평범해 보이던 어느 오후에서 왔다. 그날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비가 내렸다. 세찬 비는 아니었지만 거리의 분주함을 누그러뜨리기에는 충분했다. 길바닥은 더 짙어졌고, 공기는 더 맑아진 듯했으며, 도시의 모든 움직임이 한 박자 느려졌다. 조향사는 연못가의 익숙한 나무 벤치에 앉았다. 늘 앉아서 관찰하고 기록하던 자리였지만, 그날은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창작의 목표도, 향을 짓겠다는 의도도 없었다. 빗소리와 발밑에서 올라오는 젖은 나무 냄새, 그리고 아주 구체적이지만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각만 있었다. 차분하고, 깊고, 고요한 감각. “외롭지만 행복한 기분이었습니다.” Rei Nguyen은 그렇게 말했다. 바로 그 순간을 길어 올려 걸러 낸 것이 Pluviophile의 정신이 되었다. ‘비를 묘사하려’ 애쓰지 않는 향이다. 빗속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안에 머물며,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다가오게 둘 때의 기분을 불러올 뿐이다.

Pluviophile의 노트 하나하나는 비 갠 뒤 공기의 움직임이다

니치 향수의 세계에서 모든 향이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비에서 영감을 얻은 Pluviophile은 비를 흉내 내지 않는다. 그보다 깊은 것, 비가 막 지나간 뒤의 감각을 되살린다. 공기는 아직 축축하고, 흙은 아직 향기롭고, 마음은 아주 살짝 한 박자 가라앉는 듯하다. Pluviophile이 입을 여는 것은 바로 그때다. 섬세하고 온전한 세 겹의 노트로.

탑 노트 · 공기가 땅에 닿을 때

빗속에서 물방울이 맺힌 초록 겹잎. Pluviophile 탑 노트의 초록 잎과 비를 떠올리게 한다.
빗속에서 물방울이 맺힌 초록 겹잎. Pluviophile 탑 노트의 초록 잎과 비를 떠올리게 한다.

첫 층은 맑고 깨끗하다. 비가 그친 뒤 처마 밑에 서 있을 때처럼. 싱그러운 초록 잎, 새콤하고 산뜻한 루바브, 그리고 특유의 레인 어코드가 시원하고 깨끗한 감촉을 만든다. 아직 물방울이 맺힌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는 바람처럼 가볍다. Top notes: Green Leaves, Rain, Rhubarb

미들 노트 · 젖은 그늘 속의 꽃

가지 끝에서 빗방울을 머금은 노란 일랑일랑 꽃송이. Pluviophile 미들 노트의 일랑일랑을 떠올리게 한다.
가지 끝에서 빗방울을 머금은 노란 일랑일랑 꽃송이. Pluviophile 미들 노트의 일랑일랑을 떠올리게 한다.

모든 것이 가라앉기 시작하면 Pluviophile의 미들 노트가 열린다. 바이올렛 잎과 일랑일랑, 블루벨이 곱게 어우러진다. 부드럽고, 은은하게 분 내음이 돌며, 살짝 ‘젖은’ 결을 띠지만 우울하지 않다. 비 그친 뒤 고요한 정원의 꽃향기처럼. Middle notes: Violet Leaf, Ylang-Ylang, Bluebell

베이스 노트 · 기억 끝자락의 가만한 포옹

분홍 수술을 단 다섯 잎 흰 꽃들이 이슬에 젖어 있다. Pluviophile 베이스 노트의 부드럽고 따뜻한 결을 떠올리게 한다.
분홍 수술을 단 다섯 잎 흰 꽃들이 이슬에 젖어 있다. Pluviophile 베이스 노트의 부드럽고 따뜻한 결을 떠올리게 한다.

마무리는 따뜻하고 은근히 매콤한 베이스 노트다. 화이트 머스크와 아니스, 정향이 서로 스며든다. 강한 인상을 남기려는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그러나 아직 여기 남아 있는 익숙한 무언가에 안기는 느낌을 남긴다. Base notes: Musk, Anise, Clove

지오스민 · 흙의 숨결, 비의 기억

Pluviophile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원료는 지오스민(Geosmin)이다. 흙 속에 사는 세균이 만들어 내는 천연 화합물로, 누구나 맡아 봤지만 이름을 아는 사람은 드문 비 온 뒤의 흙냄새가 바로 이것에서 나온다. 지오스민은 균형을 잡기 어려워 향수에 좀처럼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Pluviophile에서 지오스민은 다른 향을 누르지 않고, 기억의 옅은 연기처럼 스미도록 설계되었다. 아주 조금만으로도 그 비 오던 날, 그곳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지오스민은 효과를 노리지 않는다. 기억을 깨운다. 사람을 돋보이게 하지 않는다. 대신 걸음을 멈추게 한다.

요란하지 않게, 드러내지 않게, 그러나 오래 머문다

Pluviophile은 ‘첫인상’으로 승부하는 향이 아니다.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려고 지은 향도 아니다. 대신 값진 고요 한 자락으로 남는다. 이유도 모른 채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것. Pluviophile을 뿌릴 때마다 자기 안으로 한 번 돌아간다. 평온하게, 오롯이, 아무 이유 없이.

빗속에서 자신을 찾은 이들을 위한 향

Pluviophile은 비를 피하려는 것도 아닌데 빗속에 가만히 서 있어 본 이들을 위한 향이다. 고요한 틈을, 굳이 이름 붙일 필요 없는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을 위한 향이다. Pluviophile과 함께라면 비는 더 이상 창밖의 풍경이 아니다. 나의 일부가 되고, 다시 증류되어, 향이 된다.

Pluviophile · 비를 사랑하는 사람

Pluviophile은 비의 교향곡이다. 물의 향과 초록의 서늘함, 그리고 들꽃의 아련한 여운으로 지어져, 비가 그친 뒤 코끝에 닿던 향을 빈틈없이 되살려 낸 듯하다.

이 글에 나오는 향

저널의 다른 글

저널 전체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