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쇼핑백

하우스 · 2025

단편소설 〈달에서 온 방문〉

게시일
언어
한국어
읽는 시간
16분
이 글을 원문으로 읽기: 원문 읽기

이 글은 2025년 2월 19일에 베트남어로 게시된 원문을 옮긴 번역입니다.

《221B》 전시에서 분홍빛 섞인 주황 조명 아래 허공에 매달린, 글씨가 적힌 종이 수백 장을 바라보는 여성

“그자의 이름을 내 앞에서 꺼내지 말게. 베이커가와 그자의 훼방에서 나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어. 달이니, 낡아 빠진 순간 이동 놀음이니. 자네 나라의 이 망할 백란 나무 위에 머무느니, 차라리 라이헨바흐로 돌아가 그자를 한 번 더 벼랑 아래로 밀어 버리겠네.” 〈달에서 온 방문〉, Rei Nguyen

단편소설

달에서 온 방문

은빛 달빛이 내 방 창문을 가로질러 위태롭게 걸친 백란 가지의 안쪽 잎까지 기어 내려온다. 슈퍼문이 뜬 밤. 사람들은 일주일 내내 그 이야기를 했다.

나는 조향대 곁에 서 있다. 쉰세 번째 샘플. 더는 나아갈 수가 없다. 둥글게 완성되기는 했지만 너무 안전한 향. 균형은 잡혀 있는데, 지나치게 잡혀 있다. 나는 그 균형을 깨고 싶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향은 너저분하게 균형을 지킨다. 53이라는 숫자에는 아직 출구가 없고, 잠시 멈춰 설 자격은 충분하다.

나는 달빛을 바라본다.

산후 빈혈 탓일까, 아니면 쉬지도 않고 일곱 시간을 책상에 붙어 앉아 있었던 탓일까. 보랏빛 도는 푸른 핏줄이 비치는 내 손이 흐릿하게 보인다. 오랫동안 나 혼자뿐이던 다락방에 달빛이 요정 가루를 뿌리는 것만 같다.

어디선가 길고양이가 그르릉거린다. 집 옆 홈통을 타고 밤마실을 다니는 고양이들이 내게 아주 낯설지는 않다. 기이한 버릇을 지닌 족속. 나는 그들의 그르릉 소리가 좋다기보다 무섭다. 저기 흰 양말을 신은 검은 고양이처럼, 호박색 눈을 부릅뜨고 있는 녀석이라면 더더욱. 자, 저리 가렴. 네 눈이 달보다 더 밝구나. 그런데 어쩌자고 보랏빛 안개가 너한테까지 감도는 거니. 큰일이다, 헤모글로빈부터 서둘러 보충해야겠다.

“달이 밝군.”

나는 몸을 돌린다.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흐른다. 낮고 쉰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울리는데, 바깥에서 온 것인지 내 안에서 울린 것인지 알 수 없다. 누군가 상처 하나, 핏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내 고막에 몰래 스피커를 박아 넣은 것처럼 가까운 소리다.

나는 일주일째 여기 혼자 있다. 작업이 필요할 때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다락방으로 숨어드는 버릇이 있다.

“쉬고 내일 첫 번째 버전부터 다시 시작하든가. 아니면 오늘 밤을 꼬박 새우고 저 창밖으로 병 백 개를 더 내던지든가.”

이번에는 목소리가 꽤 길게 이어져 출처를 더듬어 볼 수 있다. 바닥으로 눈을 내리자, 언제 방 안으로 뛰어들었는지 모를 길고양이 한 마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폴짝. 발레리나의 우아한 도약처럼, 고양이는 조향대 위로 올라 느긋하게 몸을 길게 누인다. 어찌나 날렵한지 내 5 ml 샘플 바이알들은 흔들리지도 기울지도 않는다.

“파촐리를 떠올려 놓고, 왜 굳이 흰 꽃을 고집하는 거지?”

잘못 들은 게 아니다. 그 탁하고 쉰 목소리는 바로 저 고양이에게서 나오고 있다.

나는 턱에 힘을 준다. 겁에 질려 혀를 깨물지 않도록. 머리 위 비스듬한 쪽, 손이 닿는 가장 가까운 곳에 꽤 묵직한 황동 촛대가 있다. 세 걸음, 저 소동을 향해 휘두르기까지 4초쯤.

내가 읽은 동화에서라면 흰 고양이는 길조였을 것이다. 이 검은 고양이는 세상 다 산 듯한 거만함을 빼면, 이상하리만치 영리하다. 내 몸이 성치 않았다면, 쉰 개가 넘는 향을 쉬지 않고 만들다 정말로 기절한 것이고, 이건 말하는 고양이 영상을 즐겨 보는 조카를 보고 난 뒤에 찾아온 고약한 장난일지도 모른다.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깨어 있고, 이 고양이가 저 기묘한 보랏빛 속에서 내 머릿속으로 말을 건네고 있는 거라면, 아무래도 정말 일이 단단히 난 모양이다.

“지난 7일 동안 자네가 파촐리에 관해 읽은 자료가 적어도 82쪽. 그리고 오렌지 블러섬은, 자기 향수에 들어 있어서 좋다고 자네에게 말한 사람이 네 명쯤 되는 원료지.”

큰일이다, 이 녀석 정말로 말을 한다.

“자네는 오렌지 블러섬을 중심 원료로 골랐어. 그러고도 계속 파촐리에 관해 읽었지.”

나는 멈칫한다. 이 고양이는 더 이상 무섭지 않다. 짜증이 난다.

“똑똑하기도 하셔라. 어디서 온 새끼 고양이가 시비를 걸러 왔을까. 꼬맹아, 나가서 쥐나 잡으렴.”

“자, 자. 아이스크림처럼 뜨겁기도 하군. 자네 책상 위에 이름을 적어 둔 시향지가 열다섯 장, 그중에 제일 오래된 게 한 장 있어. 맡고 또 맡았다는 뜻이지. 그 향이 아주 마음에 들었거나, 쓰고 또 써도 뚜렷한 진척이 없었거나. 향을 맡는 끝에도, 손으로 쥐는 모서리에도 손톱자국이 나 있군. 마지막 몇 번은 결과가 썩 즐겁지 않았던 모양이야. Orange blossom absolute @ 10%, 에탄올 희석.”

“그리고 저 시향지는 ‘대지의 입맞춤’이라는 이름을 달고 자네가 아끼는 책에 끼워져 있지. 희석하지 않은 파촐리야.”

발밑에 모기 물린 자국이 있는 것 같다. 화끈거리고 근질거리는 이 느낌. 지금 벌어지는 일은 틀림없이 현실이다.

“뭐야. 탐정 고양이야? 아니면 셜록 홈즈 흉내를 내면서 눈썰미 좋은 척하는 고양이? 그래서 알아낸 게 뭔데.”

“그자의 이름을 내 앞에서 꺼내지 말게. 베이커가와 그자의 훼방에서 나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어. 달이니, 낡아 빠진 순간 이동 놀음이니. 자네 나라의 이 망할 백란 나무 위에 머무느니, 차라리 라이헨바흐로 돌아가 그자를 한 번 더 벼랑 아래로 밀어 버리겠네.”

“누구세요?”

“말해 무엇 하나.”

몇 순간 동안, 내 뉴런들이 그 연결 고리를 더듬는다. 마치 펜시브에 들어가 추리소설을 끼고 탐독하던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걸걸하게 쉰 듯하다가도 날카롭게 새되는 이 목소리, 이 몸짓, 이 교활함과 위압감.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

“이런. 그렇게 큰 소리를 낼 것까진 없네. 그래도 고맙군.”

그 고맙다는 말이 내가 부른 ‘교수’라는 호칭 때문이라는 걸 나는 알아챈다. 고양이는 기분이 좋아 보인다. 몸을 앞으로 내밀며 그르렁거린다. 물론이지, 영국 곳곳에 뻗은 문어발 뒤의 거대한 두뇌. 런던의 으슥한 뒷골목마다 범죄의 꼭두각시를 부리는 길게 뻗은 손가락. 하지만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제임스 모리아티는 실재하는 인물이 아니다.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실제로 존재하시는 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요.” 나는 초조하다.

“내 발톱 몇 개가 저 핼쑥한 얼굴에 닿으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군. 고려해 보게. 광견병 백신 Abhayrab을 적어도 일곱 번은 맞아야 할 위험도 잊지 말고. 이 몸이 광견병 예방접종을 제대로 마쳤는지는 나도 장담 못 하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내가 묻는다. 문득 내 질문들이 하나같이 짤막하게 뚝뚝 끊긴다는 걸 깨닫는다. 턱에 아직 피가 돌지 않는다.

“모르겠네. 그전에 있었던 일이라고는 나와 셜록 홈즈가 라이헨바흐 폭포 아래로 떨어진 것뿐이야. 그 뒤로 이 몸뚱이는, 일 년 내내 꽃이 피지만 너무 멀어 딸 수는 없는 나무가 있는 자네 집 지붕을 영영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빠져나가려고 애도 써 봤지. 그런데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결국 이 근처를 맴돌더군.”

나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자네를 만나야 했던 건지도 모르지. 그리고 슈퍼문이 뜬 오늘 밤이 인사하기에 알맞은 때고.”

“저… 저기, 제가 뭐라도 해 드릴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아, 파테 좀 드시겠어요?”

범죄계의 거물에게 따끈한 파테를 권하고 있다니, 나도 믿기지 않는다. 나는 이 근방 길고양이들을 위해 이것저것 조금씩 챙겨 둔다. 찬장에 데울 만한 것이 아직 몇 가지 남아 있다. 고양이 수염은 미동도 없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없다. 몇 초간 침묵이 흐른다.

“고맙군. 마다할 이유가 없지. 며칠째 제대로 먹질 못했네. 이 몸도 배고픈 건 안다네.”

“11월의 어느 밤, 할머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단다. 그 고양이는 자기가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던 소설 속 모리아티라고 했지. 누군가의 짓궂은 장난이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배가 고파 보였어. 그래서 할머니는 소파 위에서 파테를 먹였지. 무척 맛있게 먹더구나.” 나는 이 대목을 일기에 적어 자손에게 물려주리라 생각한다. 맞은편에서는 따끈한 파테를 담았던 도자 접시가 어느새 깨끗이 비어 있다. 범죄도 식후경이라더니. “자네, 자잘한 골칫거리가 좀 있는 모양이군.” 모리아티가 느긋하게 조향대로 돌아가, 만들다 만 내 유리병들을 바라본다.

“늘 있는 일이에요. 저희는 그걸 ‘art-block’이라고 부르죠.” “물론 자네도 알겠지. 그게 자네가 만드는 작품 덩어리보다 훨씬 크다는 걸. 막힌 곳은 바로 자네 자신이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을 좇는 자들의 그 지긋지긋한 망상이 또 시작이군.” 모리아티가 중얼거린다. 비꼬는 투다. “저들 마음에 드는 향 하나를 만든다고 저들이 자네를 더 아껴 주지는 않아, 젊은 아가씨. 저들은 비트코인 왕이나 NFT에 더 관심이 많지. 자네도 숫자에는 꽤 밝은 것 같은데. 0.00그램이 몇이니 하는 걸로 왜 그렇게 고민하나. 참으로 헛된 일이야.”

“말은 잘하는군. 자네가 쓴 양자 물리학 분석 몇 쪽도 이 아가씨의 처지와 크게 다르진 않을 텐데.”

백란 가지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더니, 흰 그림자 하나가 스치듯 지나 깃털처럼 사뿐히 나무 바닥에 내려앉는다. 흰 털에 초록 눈을 한 고양이. 정확히 말하면, 며칠 동안 이 지붕 저 지붕을 헤집고 다녔는지 털이 꾀죄죄해져 흰색인지 상아색인지 모를 빛깔이 되었는데, 그래도 달이 비추는 보랏빛을 받아 반짝인다. 조금 전 모리아티가 나타났을 때와 똑같다. 위엄 있는 목소리에 익살과 나른함이 조금씩 묻어날 뿐, 이렇다 할 태도는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다.

“셜록 홈즈, 설마 선생님이세요?”

“아까 이 친구가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 모양이군.” 흰 고양이가 진저리 난 듯한 검은 고양이 모습의 모리아티를 흘깃 본다.

“어딜 가나 자네 얼굴이 빠지질 않는군. But Pate party is over.”

두 웃음소리가 크게 울린다. 방이 흔들린다. 이 소란을 듣는 사람이 정말 나 하나뿐일까. 셜록과 모리아티가 서로 호감이 있어서 저렇게 즐겁게 함께 웃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무언가가 맞지 않는다.

“이상할 것 없네, 아가씨. 우리 둘이 동전의 다른 면을 골랐다고 해서, 고양이 탈을 쓴 이 기막힌 처지에서 함께 웃지 말란 법은 없지. 슈퍼문이 우리를 골탕 먹이고 있는 걸세.”

“두 분 말씀이 사실이라는 걸 제가 어떻게 믿죠?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에요.” 나는 보랏빛 달 아래 환하게 빛나는 두 쌍의 눈을 바라본다. 슈퍼문이 내 다락방과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네가 정말로 조금이라도 의심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네. 자네가 탐내는 건 우리의 설득 몇 마디지. 우리가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걸 자네도 잘 알 거라고 나는 믿네. 자네가 나를 원래 몸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줄 수 있다면 또 모를까. 아, 7% 코카인 한 대도 곁들여서.” 나는 입을 다문다. 물론 정곡을 찔렸다.

“그게 자네 문제야. 자네는 솔직하면서도 의심이 많아. 이 둘은 좀처럼 함께 다니지 않는데.”

“두 분도 좀처럼 함께 다니시는 사이는 아닐 텐데요.”

몇 초가 흐른다. 풍경은 그대로인 듯하다. 여전히 나,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밝은 달밤에 백란 가지에서 나타난 고양이 두 마리. 보랏빛도 그대로다. 이제는 옅은 자줏빛에서 짙은 검붉은 빛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다. 내게 필요한 헤모글로빈을 저 달빛이 잔뜩 품고 있는 모양이다. 달이 휘영청 밝다. 시곗바늘 소리가 움직이는 것들 가운데 가장 적막한 소리가 된다. 밤 10시다.

“내가 보기에 자네의 배합은 여덟 번째 버전, 그게 바로 자네의 배합이네. 그 뒤의 숫자들은 불필요한 조정이었지. 마흔다섯 개를 허비하고 53번째에서 모든 걸 내던진 셈이야. 하루를 잃었군. 아주 나쁘지는 않네.” 흰 고양이가 말한다.

“54번째는 더 잘 조정될 거예요.” 나는 확신한다고 생각한다.

“부수고 다시 짓는 편이 이미 있는 것을 계속 고치는 것보다 빠르다는 걸 모르겠나. 벽은 세울 수 있지. 하지만 기초에 금이 갔어. 소용없네.” 호박색 눈이 내 배합표 위에 손으로 쓴 숫자들을 바라본다.

“이 아가씨가 언제나 자네처럼 파괴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네, 모리아티.”

“파괴는 재건의 첫걸음이지. 자네들 대부분은 그걸 파괴라고만 생각하지. 나는 그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야.”

모리아티의 느릿한 걸음에 맞춰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달빛이 창틀 너머로 비쳐 들고, 은은한 보랏빛 속 바닥에 드리운 자기 그림자보다도 새까만 검은 고양이의 모습이 보인다. 참 아름답다. 나도 모르게 그 쓸쓸한 모습을 안아 주고 싶어진다. 결국 그도 한 마리 고양이일 뿐이다.

“슈퍼문은 누구든 그 갈망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남다른 빛이지. 물론, 자격 있는 자에게만.” 셜록이 말한다.

검은 고양이는 여전히 말이 없다. 자기만의 세계에 잠겨 있는 듯하다. 달을 정복하고 조종할 방법을 궁리하고 있을까. 모리아티라면 그런 갈망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고 나는 짐작한다. 보석이나 보물은 이 두 두뇌의 관심을 끌기에 너무 시시하다.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힘을 지닌 슈퍼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쨌든. 우리는 이런 슈퍼문 타령에는 관심이 없네. 친애하는 아가씨, 지구 밖의 일에 헛된 기대를 걸지 말게. 달이든 별이든 우리와 무슨 상관이겠나. 하지만 영국의 사건들은 상관이 있지.” 흰 고양이가 다시 입을 연다. 내 생각을 읽은 듯하다. 셜록이 추론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어쩐지 지금은 그가 조금 얄밉다. 하긴 셜록은 원래 사건 해결이라는 자기 전문과 상관없는 것은 머릿속에 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테디 베어든 화성이든 예외는 없다.

“익숙한 냄새가 나는군.” 한참을 꼼짝 않던 검은 고양이가 마침내 입을 연다.

“자네가 만들고 있는 향에서 나는 게 아닐세, 친애하는 아가씨. 이건 이슬과 물안개와 진흙이 뒤섞인 냄새야. 내 그물망에서 사라진 자들이 묻힌 지하 묘지의 흙냄새가 아니라, 이끼 낀 축축한 흙과 라이헨바흐 폭포의 물에 젖은 바위 냄새지. 자네도 맡았을 거라 생각하네, 셜록.”

“맞네. 다만 내게는 피 냄새가 더 뚜렷하군.”

“달가루가 스러지고 있군.”

“우리가 돌아갈 때도 됐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흰 고양이는 내 책장 위로 뛰어올라, 책등 하나하나를 천천히 밟으며 지나간다. 아, 물론 둘 다 책을 좋아하겠지, 이 두 고양이 모두. 한 사람은 해부학의 대가, 한 사람은 이름난 학자. 하지만 책장에 꽂힌 기술서나 식물 책이라면 몰라도, 내 〈드래곤볼〉과 〈Jack Black〉에는 그도 고개를 저을 것이다. 태양계에도 관심 없는 사람이 만화책으로 뭘 하겠는가.

잠깐. 머릿속을 가로지르는 생각 하나에 가슴이 내려앉는다.

“돌아간다는 건, 라이헨바흐 폭포로 돌아가신다는 뜻이에요?”

“더 정확히는 라이헨바흐 폭포의 밑바닥이지, 친애하는 아가씨.”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셜록 홈즈와 모리아티가 뒤엉켜 싸우다 함께 폭포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결말에, 전 세계 셜로키언의 가슴이 무너졌다. 그 뒤 작가 코난 도일이 셜록을 다시 데려오기는 했지만, 그다음 이야기에 모리아티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셜록이 그 사실을 아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묻지 않기로 한다. 그 생각을 하자 이상한 슬픔이 나를 휘감는다.

“결말을 바꿀 방법은 없나요?” 나는 묻는다. 내 목소리의 떨림을 감출 수가 없다.

“친애하는 아가씨, 자네의 환대와 따끈한 파테는 고맙네만, 솔직히 내 인내심에도 한도가 있어. 자네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내게 하고 있네.”

낡은 다락방에 다시 정적이 내려앉는다. 달은 여전히 머리 위에서 밝지만, 보랏빛은 옅은 푸른빛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백란 향이 은은하게 감돈다.

길고양이의 탈을 쓰고 있어도, 셜록과 모리아티는 신비롭고 도도한 기운을 풍긴다. 두 사람에게서 증오나 적대의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다르지만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오랜 벗들 같다. 달빛 탓인지, 차가워지기 시작한 바람 탓인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내 손에는 푸른 핏줄이 비치고, 온몸이 차가워진다.

검은 털과 흰 털이 달빛 때문에 빛이 바래는 것 같다. 아니다.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천천히, 하지만 조금씩. 흰 고양이는 어느새 책장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려 검은 고양이 곁에 앉아 창가의 달빛을 바라본다. 시계가 자정을 알리기 시작한다.

“왜 범죄자가 되기로 하셨어요?” 나는 모리아티에게 묻는다. 정면으로, 어느 정도는 무례하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를 교수님이라고 불렀으면서. 하지만 그 많은 선택지 가운데 제임스 모리아티가 왜 하필 그런 모습이 되었는지 나는 정말 알고 싶다.

“이런. 자네도 보다시피, 범죄자라는 호칭도 교수라는 호칭도 내게는 다 있지. 하지만 실은, 나는 그저 제임스 모리아티일 뿐이네.”

“인정해야겠군. 제임스. 자네가 없는 날들은 참으로 따분했네. 코카인도 담배도 자네의 정교한 계획과 노련함만큼 나를 즐겁게 하지는 못했어. 런던 경찰들도 자네 사건이 생길 때마다 내게 사정하러 오는 데 이제 질려 버렸을 걸세.”

“그렇다면 자네도 이제 내 일에 코 좀 그만 들이밀게. 아, 그것도 어쩌면, 우리가 라이헨바흐로 돌아가고 나면.”

“자네가 그리울 걸세, 제임스.”

두 사람은 저마다의 풍경과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하다. 달빛은 이제 여느 때보다 반짝이고 크다. 푸른 불길 속에서 타오르는 것만 같다. 나는 먼지 한 톨 한 톨과 함께 느리게 흘러가는 꿈과 현실의 물결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다. 내 손은 점점 더 밝아진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나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했던 두 고양이의 돌아앉은 등, 그 맞은편에는 어지러운 감정을 안은 내가 있다.

“Take care of your thoughts, Rei.”

두 뒷모습이 사라진다. 시계가 새벽 1시를 알린다.

달빛은 처음의 은은한 빛으로 돌아온다. 창문은 열려 있다. 향 병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흰 꽃이 가득 핀 백란 가지가 아득히 향기를 풍긴다.

Rei Nguyen

이 글에 나오는 향

저널의 다른 글

저널 전체 글 →